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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사전/경제인물

김종희 인물사전 (한화그룹 창업자, 초대회장)

by 편집자R 2022.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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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김종희 한자 이름 金鍾喜

 

김종희 영어 이름 Kim Chong-Hee

 

김종희 호 현암(玄巖) 현암 김종희

 

김종희 직업 

한화 그룹의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으로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김종희 나이

김종희는 1922년 11월 12일에 태어나 1981년 7월 23일 오후 9시에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종희 띠는 1922년생으로 임술(壬戌)년 개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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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 젋은시절

김종희 고향 

한화 창업주 김종희는 1922년 11월 12일 충청남도 천안군 천안면 부대리에서 태어났다.

現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부대동 출생이다.

 

김종희 본관

김종희의 본관은 순천 김씨(順天 金氏) 39 세손상(商)/ 종(鍾) 항렬

순천 김씨(順天 金氏)는 전라남도 순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 성씨이다.

전남 일대와 경북, 경남 일대에 주로 분포하고 있으며, 시조 김총(金摠)은 후삼국시대의 인물로 본래 후백제의 인물이다.

 

김종희 가족 및 성장

김종희는 아버지 김재민어머니 오명철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종희의 형제들로는 김종희의 형인 장남 김종철(1920 ~ 1986)은 6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김종희의 여동생인 장녀 김종숙은 (주)우일의 김영일 회장과 결혼하였다. 삼남 김종환은 재미 사업가로 미국에서 사업활동을 하고 있으며 막냇동생 김종식(1935 ~ 2009)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장남인 형과 재계가 아닌 정계에 뜻을 두었다. 

 

김종희는 젊은 시절부터 의리있고 괄괄한 성격으로 유명했는데 학창 시절 일화로부터 유추해보자면 어릴 적부터 이어져온 성격 같다.

경기도립 상업학교 재학당시 중퇴하게 된 원인이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학생을 구타하자 김종희가 나서서 그 일본인 학생을 때린 일로 인해 퇴학을 당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 일로 김종희는 원산 상업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는 일이 있었다.

학교 졸업이후 1942년에 조선 화약 공판 주식회사에 입사한 뒤 광복 후인 1952년 10월 28일에는 입사한 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부산에서 한국화약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국내 여타 다수의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일제가 남기고 떠난 자산인 적산을 정부로부터 헐값에 사들여 한국화약주식회사 사업의 규모를 투자 대비 엄청난 효율로 키울 수 있었다.

 

1956년 4월에는 현재 인천 남동구 고잔동에 위치한 한화기념관 자리에 있던 인천 화약공장을 복구하여 국내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자체 생산하며 사업을 번창시키면서 1967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이사에 선출되었다. 이와 함께 그리스와의 인연도 시작되어 주한 그리스 명예 총영사로 위촉되었다. 이때의 인연으로 현재도 서울 청계천 한화그룹 사옥에 주한 그리스 대사관이 있고, 김종희의 손자이자 현재 한화 김승연 회장의 아들인 김동선이 한때 주한 그리스 대사의 양자로 입적되었던 적도 있다.

1968년에는 제일화재를 삼호그룹으로부터 인수하고 경인에너지를 설립했다.

1973년에는 태평 개발도 세워 관광업에도 사업을 확장하면서 1975년에 이르러서는 학교법인 천안북일학원을 설립하여 이듬해인 1976년 3월 6일 천안북일고등학교를 개교하였고 같은 해 서울 플라자호텔을 개업하였다.

이렇게 사업들을 확장시켜나가면서 경제계 주요 인물로 자리 잡은 김종희는 1972년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 1977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각각 지내면서 경제계 주요 인사로 자리매김한다.

1977년에 이리역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빠른 대국민 사과 이후 당시 약 90억 원(현재 물가가치상 약 5,000억 원 이상의 가치) 가량을 내놓고, 모든 직원들을 총동원하여 재해복구에 동원하였다. 당시 그룹 계열사 전 직원을 모두 현지에 출장 보내서 헌혈하게 하였고, 동시에 보너스 전액과 11월 월급의 2%씩을 각출해서 재해 기금으로 썼다.

이렇게 의리의 풍운아로 이름을 떨친 김종희 회장도 말년에 당뇨와 악성 신부전증, 신경통 등의 합병증으로 고생하다가 1981년 7월 23일 오후 9시,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에서 5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급작스럽게 사망하는 바람에 유언장이 없었고, 유언이 없었던 만큼 후계 체제에 대한 준비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장남 김승연차남 김호연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 당시 차남 김호연이 공군 장교로 군 복무 중이었던지라 일단 장남 김승연이 고작 29세의 나이로 그룹을 독차지하며 이후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한화는 현재의 김승연 회장 체제로 거듭난다. 차남 김호연은 빙그레를 분리해 물려받아 현재 빙그레 회장 역임 중이다.

 

김종희 학력 및 출신학교

 

천안북일 학교(現 천안북일초등학교) 전학

직산 공립 보통 학교(現 직산초등학교) 졸업

경기도립 상업학교(現 경기 상업고등학교) 4년 중퇴

원산 상업학교 졸업 (1941년 12월)

 

김종희 그 외

어릴 때부터 의리를 중요시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괄괄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이런 성격과 사업을 엮여서 '다이너마이트 김'이란 별명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그가 세운 한화그룹의 기업 경영 철학에도 "신용과 의리"가 강조되어 있으며 그의 자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김종희는 성공 회교도로서 어린 시절 천안 북일 학교 시절 세실 쿠퍼 주교에게 직접 세례 받았다고 한다. 성공회 신명은 디도

 

김종희가 창단한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는 후일 1985년 창단한 프로야구 제7구단 빙그레 한화 이글스(現 한화이글스)의 기반이 되었다. 이글스와 관련된 일화로는 청주중학교 야구선수였던 이상군을 북일고로 직접 데려오고 이상군의 형들을 한화그룹에 취직까지 시켜주며 스카우트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인연으로 김종희의 장례식에 그의 관을 운구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이상군이 있었다. 김종희의 아들인 김승연 한화 회장과도 친분이 두터운 편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희와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하는데 12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김종희 회장의 깍듯한 태도와 성격으로 이병철 회장이 각별히 여겼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를 이어 김종희 회장의 아들 김승연 회장과 이병철 회장의 삼남인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역시 절친한 관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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